Seongjin Jeong

Artist : Seongjin Jeong
Exhibition title : Seongjin Jeong 《dock》
Venue : Art Space Hyeong, Seoul, Korea
Date : November 24 – December 11, 2022
Curated by Geemnjang
횡단열차 –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정성진 개인전 《dock》 작가노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그럼 조각은 무엇을 남길까. 아니 무엇이 남아 기록될까. 물론, 조각은 무생물 혹은 사물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특성 중 하나가 만물에 애써 인간과 닮은 점을 찾아 의인화, 인격화하지 않나. 미술도 그 예외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 여기 우리의 눈앞에 볼륨을 가진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에 쉽게 의인화되는 것이 조각이다. 생각의 출처를 결국 찾지 못하였지만 나 역시 내가 만든 조각에 대해서 의인화하고 있는 하나의 생각을 꺼내 보고자 한다. 작업실에서 온몸을 이리저리 굴리고 애를 써가며 조각을 낳는다. 미성숙한 몸으로 태어난 조각을 전시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케어하며 마지막까지 인큐베이팅 한다. 그 후 가장 멋진 자세로 영정 사진을 찍고 그 형태에 알맞은 관을 짜며 마침내 출가 준비를 마친다. 이때 전시는 하나의 화려한 장례식이다. 좋은 주인을 만나지 못한 대부분의 작업은 미리 맞춰둔 관에 다시 제 몸을 넣어 작업실 그리고 창고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재된 작품이 때로는 오랜 기간 동안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언제 깨어날지 모를 작품의 코마 상태이며 때로는 만든 자의 손에 물리적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나는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로 모듈형 작업을 전개해야만 하는 명분을 얻었지만, 사실은 경제와 효율적인 측면을 고려하며 시작하기도 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작업을 시작하는 첫 단계는 줄자로 작업실의 문 사이즈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적재와 운송의 이점도 존재하지만 조립 시 자석이 착! 하고 부딪치는 소리의 청량한 쾌감이 내가 시스템 모듈형의 작업을 지속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겠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위해 여러 번 운반해야 하는 수고를 인내 해야 하지만 큰조각 또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적인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현재에 적응하며 주체적인 태도로 조각을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모든 조각을 모듈형으로 운용하는 나의 경우, 전시가 끝난 후 매번 종류별로 포장되기 때문에 다양한 조합의 부름을 받으면 창고에서 손쉽게 다른 작업으로 소환되어 생명력을 지속한다. 이는 마치 지난 기록을 보존하면서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박물관처럼 잊히거나 소외되는 조각 없이 불멸의 생명력을 지니길 바라는 개인적인 망상의 실천이기도 하며 곧 태도다. 언젠가 내가 죽어 남겨질 조각들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금부터 시스템 정착을 시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다. 고대 미라부터 현재의 냉동인간까지 인류와 과학기술이 발전했길 바라며 잘 포장되어 미래로 보내진다. 나의 작업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한데 등장하며 그것들 사이에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저장되어 미래로 보내진다. 인류의 삶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중 하나가 미술이라면, 그 중에서 조각은 인위적으로 현재의 시간을 물리적으로 저장하는 기록물이 되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지금에 소환된 조각들은 속을 게워낸 미라처럼 내부가 텅 빈 외형을 가지고 여기에 소환된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담겨 있던 이야기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탈락한다. 그렇게 소환된 과거는 현재의 것들과 다양하게 재조합되고 이접을 시도하며 무한 증식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많은 것을 담아낸 기록의 조각은 무한한 미래로 보내진다.


정성진은 미술사의 조각을 주된 참조로, 비디오 게임 속 캐릭터와 이펙트, 건설 현장의 비계(飛階) 등을 합성하여 전사형 조각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합성 조각에서 나타나는 가변적 조각의 가능성을 위한 도킹은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연결과 접속, 결합 등의 형식를 기반으로 뭉치고 재조합되는 가변 조각 시리즈는 이번 전시 <DOCK>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변화를 노출한다. 작가의 관심 취향이 반영된 이미지들, Zelda의 요소, 신들의 조각, 조각의 신, 조각의 동세들이 혼재된 그의 조각(parts)은 이번 전시를 위해 <횡단열차>가 된다.
완벽하지 않은 형태가 완성된 형태보다 훨씬 더 상상력을 활성화 할 수 있다는 로뎅(Auguste Rodin)의 말을 확신하듯 작가는 다양한 이미지를 결합시켜 좀 더 복잡한 구성과 형태, 새로운 서사를 향한 하이브리드를 구축한다. 또한, 정성진은 메인 컬쳐 에니메이션을 빌어와 납작한 조각으로 변모시킨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세기를 맞는 오늘, 하이브리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동시대미술의 전형적인 혼성모방 이면에 또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그의 파츠들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새로운 순간을 담은 혼성과 변형의 조각을 시도한다는 점이며, 그것이 오늘날의 시대성인 불확정성의 개념과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합을 통해 같은 무대에서 매번 다른 서사와 다른 배우가 결정적인 연기를 하듯, 새로운 순간을 담고 있는 그의 조각은 매 새로운 서사와 형식적 단편들로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정성진의 조각은 분명 동시대 미술 상황 속에서 여타 장르의 특정성에서 벗어나 변모하는 조각이라는 새로운 조각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의 예술, 오늘날의 조각의 방향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사유를 자극하고, 다양한 해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그의 조각은 동시대 조각에 대한 고민이 분명 반영되어있다. 작품이 우리에게 질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예술가의 필살기가 아닐까. 조각가로서 정성진이 이 시대의 인식과 문화를 반영하는 방식은 과거의 무엇이었던 고전 조각을 환기시키는 것이며, 인터넷이나 메인컬처 게임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동시에 그 이미지의 서사에서 탈락한 유랑하는 기표들을 관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차용하는 것이다.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가상과 현실, 이질적인 것과 동질적 것, 전통조각과 동시대조각,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역사와 현실과의 관계 등 대립점에 위치한 이념들을 한자리에 끌어모으는 그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조물주처럼 인체 조각에 투영된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의 문제를 개입시키며, 작품의 다양한 의미를 생산해내고 있다. 그리고 예술실천 방식과 동시대 미술의 특성들을 한데 뒤섞고 이를 변신과 변형가능한 열린 매뉴얼로 가공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고전 조각에 대해 기념비를 세우거나 기념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지도 않는다. 그는 오직 조각가(창조자)의 태도로 조각에 임한다. 젤다의 전설의 모티브가 되는 끊임없이 전개되는 영웅의 서사를 입어 자신을 조각에 등장시키며 자신의 서사를 구성한다. 그의 조각이 우뚝 서 있는 작가 자신을 반영하듯 그의 존재는 강렬한 영웅성을 드러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비로소 드러낸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미술사 안에서 작가는 전설이 되고 싶은 욕망을 작품에 투영하고 이를 실현시킴으로써 현존하는 동시대 조각의 전사가 된다. 그의 전사조각은 필자가 본 동시대의 가장 솔직한 전사 형상이다.
먼저, station에 전시된 <횡단열차:개척의 쇄빙선>의 주된 참조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각가 류인의 <급행열차-시대의 변>이다. 작가는 류인이라는 개인의 삶, 그리고 그가 사회에 발언하는 예술적 태도에 매료되어 선배작가의 이미지를 참조하여 형상을 구현한다. 남성의 비장함을 상징하듯 벌려선 굳건한 두 다리, 다리 벌리기는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영역을 확보하려는 동세로 작가는 이러한 조각의 신체를 선택적으로 빌어옴으로써 자신의 의식을 반영한다. <횡단 열차: 더 새로운 항해>의 주된 참조는 미술사의 라오콘 군상으로, 뱀이 감싸고 있는 팔의 극적이고 역동적 동세를 빌어온다. 실제 라오콘 조각을 본 적이 없는 작가는 내용적으로 격한 감정의 폭발로 보여지는 장면을 작가 자신의 정서로 변환시키고,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듯 근육의 도드라짐이나 강한 동세를 접목시킴으로써 작품을 살아 숨 쉬게 한다. 두 횡단열차시리즈에서 작가의 신체는 조각의 얼굴에 링크되고 동세를 채워주는 조합의 방식으로 개입되는데, 이러한 조각가의 태도는 무한한 생명력의 힘을 지닌 조각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새로운 형상을 창조한다.
정성진은 고전 조각이 내재한 서사, 즉, 류인과 라오콘의 발언 내용, 혹은 그와 맞먹는 오늘날의 시대적 불안과 억압에 대한 메시지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고전의 서사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건 새로움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이며, 고전 조각의 동세를 참조하여 자신의 조각에 자신의 얼굴을 대입시키고, 신체를 이식시킴으로써 자신을 직접 개입시킨다는 건 고전 조각에 현재성을 담는 동시대적 형상을 만들고자 하는 동시대 조각가의 실험정신이다. 그래서일까. 과거로부터 소환된 그의 파트들은 내부가 비어있다. 파트들의 내부는 기존에 담겨 있었던 서사로, 제외하거나 탈락시키는 작가의 능동적 취사선택을 통해 전형적인 혼성모방(pastiche)의 형태를 취하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지게 된다.
2주 동안 station에서는 연성진(둥근 좌대 위의 마법진) 위에 올라선 작가 본인을 분한 조각이, storage에서는 연성진 위의 조각을 위한 인벤토리 파츠가 전시된다. 3주차 station에서는 전시에 등장한 파츠들이 해체된 상태로 전시된다. 관객은 작품의 파트의 성격과 출처에 주목하여 조각의 외형적 덩어리를 읽을 수도, 그것을 참조로 두고 조합하고 연결하는 connect에 초점을 맞춰 읽을 수도 있다. 혹은 이 둘을 연결짓고 조각적, 미학적, 신화적, 서사적, 심리적 관점에 따라 살을 더해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산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link :게임 <젤다>시리즈의 주인공 이름, 연결과 접속, 결합을 통한 가변적 조각 방식
글: 김은희







187 x 120 x 95 cm


187 x 120 x 95 cm



